제8장
JAINA PILGRIMAGE IN SOUTHERN INDIA
성지의 건축순례 - 남인도

가미야 다케오


남인도 자이나 사원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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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번역된 아이자이아·벌린(Isaiah Berlin)의 『어떤 사상사가의 회상(Memories of a Historian of Ideas)』(*1) 이라는 책을 읽어 보니 재미있는 글이 쓰여져 있었다. 바린이라고 하는 사람은 유명한 『자유론』을 쓴 영국의 정치사상사 학자이지만, 언젠가 인도에 초대되어 당시의 네루 수상과 회담을 하였다. 네루는 캠브릿지 대학 출신으로 인도의 독립 후에 수상을 역임함과 동시에 비동맹 제국의 리더로서 국제적으로도 존중되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일본이 화제가 된 때에 네루 수상이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군국주의적, 제국주의적, 파시스트적이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지독한 짓을 하였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일본에 가면 그들을 형제라고 느낍니다」라고. 그는 젊은 시절부터 영국에서 사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영국인 친구도 많다. 그래도 인도인인 그는 유럽인으로부터 멸시당하고 있다는 의식을 불식할 수 없었다고 한다.

 반대로 일본인이 인도에 가면 인도인을 자기들의 형제라고 느낄 수 있을까? 아마 그러한 사람은 드믈 것이다. 오히려 지금의 일본인은 구미인을 형제라고 느끼고 무의식중에 아시아 사람들을 깔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명치유신 이래의 「탈아입구(脫亞入歐)」와 전후 미국화의 결과물이다.

 일본인들은 서양의 기독교 문명과는 친하게 접하여 왔지만, 아시아의 힌두교나 이슬람교의 문명과는 계속 소원하였다. 더구나 자이나교 등의 종교에 관해서는, 그것이 불교와 때와 장소를 같이 하여 태어난 형제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무시하여 온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의 행형화한 불교의 참상을 볼 때에 필자에게는 자이나교 쪽이 훨씬 바람직하고 우수한 종교인 것 같이 보인다.

 그것이 단지 종교의 문제라면 건축잡지에서 다룰 것도 아니지만, 그 자이나교가 훌륭한 사원건축도 구축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연재까지 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네루 수상만큼 인도인에게 형제애를 느끼고 있지 않지만, 자이나교의 이념에는 대단히 흥미를 갖고 공감도 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자이나교를 높게 평가한 사람이 몇몇 있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최근 재평가되고 있는 박물학자인 미나미가타 구마구스(南方熊楠)로서 그는 비교종교학의 고찰에서 「인간 뿐만이 아니라 어떠한 작은 동물이나 식물의 생명까지도 소중히 여긴다고 하는 점에서 불교보다도 기독교보다도 자이나교가 우수하다」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미나미가타의 글이 읽혀지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고, 필자가 자이나교라는 종교를 알게 된 것은 그에 의해서가 아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 이름도 모를지 모르지만 예전의 전공투(全共鬪; 일본의 1960년대 학생운동의 조직) 세대의 젊은이가 애독한 문필집에는 요시모토 다카아키(吉本隆明)나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와 더불어 다카하시 가즈미(高橋和巳)라는 이름이 있었다. 필자도 또한 그의 소설, 엣세이는 전부 읽었는데,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우울한 당파(黨派)」의 이 작가는 자칭 자이나 교도이었다.

 다카하시 가즈미가 「일본에서 오직 한 사람의 자이나 교도」를(농담기도 있었겠지만) 자칭한 것은, 그가 문학상의 스승으로 존경한 하나야 유타카(埴谷雄高)의 영향이었다. 근대 일본의 가장 우수한 사상가라고 필자가 생각하고 있는 하나야 유타카는 전후 곧바로 쓰기 시작한 장편소설 『사령(死靈)』(*2) 을 지금도 계속 쓰고 있다. 고령의 하나야는 아마 그것을 완성시킬 수 없을 것이지만, 그 「자서(自序)」에 있어서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예고하고 있다.

 그것은 주인공이 이야기하는 하나의 비젼으로서, 고대 인도의 석가가 보리수밑에서 깨달음을 얻을 때에 또 한 사람의 각자(覺者), 대웅(大雄)을 생각한다. 그리고 멀리 있던 대웅이, 명상에 몰두하고 있는 동굴로 석가를 만나러 와 대화를 나눈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 <대웅>이야말로 자이나교의 개조 마하비라의 한역(漢譯)된 이름이다. 이 두 사람의 대화는 문답인데 석가가 대웅을 당하지 못한다. 그 때에 이긴 측인 대웅의 몸은 재가 되어 뿔뿔이 흩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석가는 「실재(實在)」의 대표이고, 대웅은 「비실재(非實在)」의 심볼이다. 이론투쟁에 있어서는 비실재가 승리하지만 현실에서 살아 남는 것은 항상 실재 쪽이다.

 하나야 유타카는 무슨 일이든 애매한 채로 끝내버리는 일본의 풍토와는 대조적으로 사물을 철저히 그리고 극단적이기까지 사유하는 자이나교에 마음을 크게 빼앗긴 것이었다. 인간이 서로 죽이는 것을 훈계하는 것은 「그대여, 죽이지 말지어다」라는 도덕률이지만, 그 「비살생」의 계율을 철저하게 하면 인간을 죽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물은 고사하고 식물조차도 먹을 수 없게 된다.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으면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시스템은 부정되고 만다. 그러한 근본적인 문제까지 철저히 생각하는 자이나교의 태도는, 「존재의 혁명」을 구하고 있던 하나야가 지향하던 것과 깊게 연결된 것이다.

 18년 전에 그 때까지 근무하던 설계사무소를 그만두고 우선은 3개월만 여행을 하려고 할 때에 그 목적지를 인도로 선택하였다. 그리고 인도에 가면 무엇보다도 자이나교의 성지를 방문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하나야 유타카와 다카하시 가즈미가 그렇게까지 평가하는 종교라면 가령 건축적으로는 대단한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사원을 돌아 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 당시 자이나교의 자료는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알게 된 성지를 방문하고 나서는 대단한 것이다 아니다의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아부산이나 자이살메르에 확실히 매료되고, 사트룬자야나 기르나르의 「산악 사원도시」에서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라나크푸르의 사원에서는 압도적인 감동을 맛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원이 어떻게 하여 태어난 것일까를 알고 싶었고, 또한 그것을 연구하여 언젠가는 책을 쓰려고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이것이 필자와 자이나교 건축과의 관계의 시작이었다.


  1. 『어떤 사상사가의 회상(아이자이아·바린과의 대화)』 I·바린, R·잔베그로 저, 가와이 히데카즈(河合秀和) 번역, 1993, 미스즈 서방

  2. 『사령』 하나야 유타카 전집 제3권, 1998, 강담사
  • 그 후에 하나야 유타카는 『사령』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1997년 2월 19일에 세상을 떠났다.



무크타기리  MUKTAGIRI HILL * (M)

산악 사원도시 TEMPLE CITY * 18세기~

무크타기리의 산악 사원도시

대개의 사원도시가 산정상에 우뚝 솟아 있는데 반하여, 여기에서는 사원군이 골짜기에 위치하기 때문에 녹음이 우거진 산과 같이 있어서 왠지 일본적인 느낌이 든다. 이 아름다운 풍경이 자이나에 있어서의 정토의 이미지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개의 건물은 그다지 질이 높지는 않고 그 스타일도 전통으로부터 약간 벗어나 있는 것 같이 보인다. 나그푸르에서 당일치기가 가능. 급행버스로 3시간 반 가면 아므리오티에 도착하고, 거기서 다시 차로 2시간 가면 도착한다.




엘로라 ELLORA **** (M)

석굴사원군 CAVE TEMPLES *** (+S) 9세기 (제2장 참조)

엘로라의 초타·카일라사 사원

자이나의 석굴사원의 최고 걸작은 엘로라이다. 불교, 힌두교의 석굴사원군으로부터 1km 정도 떨어진 곳에 무리를 이루어 밀도 높게 조각되어 있다. 대개의 관광객은 불교굴부터 보기 시작하기 때문에 최후의 자이나굴에 다다라서는 너무 지쳐 허둥지둥 대충 끝내버리는 사람이 많다. 자이나교에 흥미가 있는 사람은 그 순서를 반대로 하면 좋을 것이다. 아우랑가바드에서 버스나 택시로 당일치기. 유명한 관광지이기 때문에 레스토랑도 있다.




아이홀레 AIHOLE ** (K)

석굴사원 CAVE TEMPLE 6세기
메구티 사원 MEGUTI TEMPLE * 634년

아이홀레의 메구티 사원

지금은 작은 마을이 되었지만 인도 중세건축 발상지의 하나로서 중요하다. 수십 개의 유적의 대개는 힌두사원이지만, 자이나의 석굴사원과 사원은 보다 오래 되었다. 석굴사원은 미완성인데 천장에까지 섬세한 조각이 있다. 언덕 위의 메구티 사원은 남방양식의 형성 도중에 있는 것이나, 유감스럽게 상부구조가 없어져 렸다.




팟타다칼 PATTADAKAL ** (K)

사원 JAINA TEMPLE * 9-10세기

팟타다칼의 자이나 사원

힌두 사원군과 떨어져 자이나 사원만 하나 서 있다. 벽면에는 그다지 조각이 없어 담백하다. 바다미에서 아이홀레로 가는 도중에 있고, 바다미까지 30km, 아이홀레까지 25km. 아이홀레에도 여행자·방갈로가 있지만 바다미에서 당일치기를 하는 것이 좋다.




바다미 BADAMI *** (K)

석굴사원 (제4굴) CAVE TEMPLE No.4 * 6세기~

바다미의 자이나 석굴사원

실로 아름다운 곳이다. 작은 호수의 한 면에 마을이 면하여 있고, 다른 3면을 빨간 바위산이 둘러싼다. 많은 사원이나 성지와 함께 바위산에는 4개의 석굴사원이 나란히 서 있다. 그 하나만이 자이나교의 것으로서 티르탄카라상이 새겨져 있다. 쇼라푸르와 가닷그를 연결하는 지방 철도의 바다미역에서 3km. 이 지방은 대단히 큰 건축유산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통, 숙박이 모두 불편하기 때문에 여행객이 적은 편이다.




함피 HAMPI(VIJAYANAGARA)*** (K)

헤마쿠타 사원군 HEMAKUTA TEMPLES * 10-14세기

함피의 헤마쿠타 사원군

남인도에서 최후까지 번영하였던 힌두왕조의 수도 비자야나가라의 도시유적에는 많은 힌두사원에 섞여 몇 개의 자이나 사원이 있다. 헤마쿠타 언덕에 남아 있는 자이나 사원군은 창건 당초는 힌두교에 속해 있었던 것 같다. 바로크적인 비자야나가라 양식보다도 훨씬 단순한 옛 양식을 전하고 있다. 호스페트에서 13km떨어진 땅에 있는 유적 전체를 하루로는 다 볼 수 없다.




락쿤디 LAKKUNDI ** (K)

브라흐마·지날라야 BRAHMA-JINALAYA TEMPLE ** 11세기

락쿤디의 브라흐마·지날라야

가닷그 주변에는 찰키야 왕조의 사원건축이 수 없이 산재하고 있다. 그 대개는 힌두교에 속하지만 락쿤디라는 마을에 남아 있는 17개의 사원 중에 최대의 것은 자이나 사원이다. 남방양식 건물의 전면에 큰 곁집을 돌출시킨 목조풍의 개방된 만다파가 독특하다. 기둥은 녹로(轆轤)를 돌려 돌을 깎아 만든 원기둥이다. 가닷그에서 담발과 함께 당일치기 60km의 여정.




바트칼 BHATKAL ** (K)

찬드라나타 사원 CHANDRANATHA BASTI * (+S) 17-18세기

바트칼의 찬드라나타 사원

만가롤의 북쪽 140km의 이 부근부터 서해안 양식이 시작된다. 서가츠 산맥과 아라비아해에 끼여 있어 비가 많기 때문에 구배지붕이 가설되고 케랄라주에서는 목조가 된다. 이 사원은 몇 개의 집이 일렬로 연속해있고 그 전면에 스탬바를 세웠지만, 같은 지역의 힌두사원과 비교하면 조각이 적다.




카르칼 KARKAL ** (K)

차투르무카 사원 CHATURMUKHA BASTI ** 16세기
히리양가디의 사원촌 TEMPLE TOWN AT HIRIYANGADI * (+S) 14세기~

카르칼의 고마테슈와라상

도심에서 가까운 언덕 위에 차투르무카(사면당)의 사원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각 3개씩 합계 12개의 티르탄카라상이 등을 맞댄 본존으로 되어 있다. 이 맞은편의 언덕에는 높이 13m의 고마테슈와라상이 1432년에 만들어졌다. 가까운 히리양가디에는 또한 당당한 마나·스탬바를 중심으로 하여 자이나의 사원촌이 형성되어 있다. 무다비드리에서 17 km.




무다비드리 MUDABIDRI *** (K)

찬드라나타 사원 CHANDRANATHA BASTI *** (+S) 15세기
자이나 묘원 JAINA TOMBS * 19세기 (제4장 참조)

무다비드리의 찬드라나타 사원

이 지방의 자이나교의 중심지에는 찬드라나타 사원 이외에도 많은 사원이 있고, 사원촌에는 마나·스탬바가 나란히 서 있다. 마을 변두리에는 자이나 스님의 특이한 무덤군도 있다. 만가롤로부터 35km. 이 지방은 버스 교통편이 좋기 때문에 카르칼과 함께 편안히 당일치기를 할 수 있다.




베누르 VENUR (YENUR)* (K)

샨티슈와라 사원 SHANTISHWARA BASTI * (+S) 15세기

베누르의 샨티슈와라 사원

무다비드리의 동쪽 25km의 산중. 사원의 내부에는 흑대리석에 의한 24개의 티르탄카라상이 나란히 서있는데, 오히려 옥외의 고마테슈와라상이 유명하다. 17세기의 작품인데, 정도나 크기에 있어서 슈라바나벨골라나 카르칼에 비하여 상당히 떨어진다.




구루바얀케리 GURUVAYANKERI * (K)

샨티슈와라 사원 SHANTISHWARA BASTI * (+S) 12세기

구루바얀케리의 브라흐마데바·스탬바

기와지붕의 집이 늘어서 있는 경내에 특이한 탑 모양의 건물이 있다. 퍼거슨은 이것을 5기둥의 집이라고 쓰고 있지만 실은 중앙의 기둥은 브라흐마데바·스탬바이다. 이것이 특별히 중요한 스탬바이었던지 후에 지붕을 걸어 4기둥 건물모양으로 둘러싼 것이다. 베누르에서 20 km 정도 더 동쪽에 있는 마을의 교외.




할레비드 HALEBID *** (K)

사원군 JAINA BASTIS * (+S) 12세기

할레비드의 자이나 사원군

할레비드는 조각의 홍수라고 할 만한 힌두교의 호이살레슈와라 사원으로 유명하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 3개의 자이나 사원이 있다. 어느 것이나 모두 외벽에는 장식이 적고 간소한 옛날 형태를 전하고 있다. 내부는 녹로로 만든 기둥이 빼곡히 들어차고 흑대리석의 티르탄카라상이 안치되어 있다. 핫산에 숙소를 정하고 할레비드와 벨루르를 보고 다니는 여정은 90km.




슈라바나벨골라 SHRAVANABELGOLA ** (K)

사원군 JAINA BASTIS ** (+S) 10-12세기 (제4장 참조)

슈라바나벨골라의 찬드라나타 사원

남인도의 자이나교 최대의 성지이다. 큰 탱크(저수지)를 사이에 두고 두개의 바위산이 마주 본다. 빈드야기리 언덕에는 981년에 하나의 바위에 조각된 높이 18m의 고마테슈와라상이 서 있고, 12년에 한 번 하는 성대한 제례가 1993년에 열렸다. 사원군은 찬드라기리 언덕 쪽이 중요한데, 우아한 마나·스탬바와 동시에 남방양식을 보이고 있다. 핫산의 동쪽 50km.




쿰바다할리 KAMBADAHALLI ** (K)

판차쿠타 사원 PANCHAKUTA BASTI ** (+S) 10세기

쿰바다할리의 판차쿠타 사원 천장

이 사원은 5개(판치)의 집이 얽힌 구성이 여간 흥미를 끄는 것이 아니다. 문을 들어가면 2개의 집이 마주 보고 그 속에 3개의 집이 만다파를 공유하고 있다. 각각의 집은 각각의 본존을 숭배하고 있는데, 외형적으로는 아주 많이 닮은 남방양식의 비마나이다. 문의 전방에는 또 하나샨티나타 사원이 있고, 그 안에는 훌륭한 천장조각이 있다. 슈라바나벨골라와 함께 핫산에서 당일치기를 하면 140km의 여정.




칸치푸람 KANCHIPURAM *** (T)

발다마나 사원 VARDHAMANA BASTI * (+G) 12세기~

칸치푸람의 발다마나 사원

마드라스의 서남쪽 70km의 칸치푸람은 힌두교의 사원으로 가득 찬 마을인데, 강을 건너 티루파룻티쿤람이라는 마을에는 자이나 사원이 있어 지나·칸치라고도 불린다. 그 개방된 만다파에는 17세기의 천장화가 선명하게 남아 있어 티르탄카라의 다양한 장면을 그리고 있다.




틸말라이 TIRUMALAI * (T)

사원군과 조각 TEMPLES AND SCULPTURES * (+G) 11-13세기

틸말라이의 발다마나 사원

화창한 마을의 바위산 주위에 사원이나 석굴, 티르탄카라상 등이 산재하고 있다. 사원은 자이나에서는 드물게 전형적인 드라비다 양식으로서 고푸라(사문) 속에 발다마나와 네미나타의 2개의 사원이 있다. 배후의 석굴에는 벽화도 남아 있다. 벳롤과 티르반나말라이의 중간인 포룰르에서 15km 정도 동북으로 들어간 곳에 있는데 아는 사람이 적다.




싯탄나바살 SITTANNAVASAL * (T)

석굴사원 CAVE TEMPLE * 7-9세기

싯탄나바살의 자이나 석굴사원

극히 작은 석굴로서 티르탄카라상의 조각도 있지만, 여기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아잔타와도 닮은 고대의 천장화이다. 선녀, 물고기, 새, 연못 등이 그려져 있어 자이나의 낙원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는데 아깝게도 박리가 심하다. 프두콧타이에서 15km. 나룻타말라이와 코둔바룰르를 합쳐 하루의 여정.




칼루구말라이 KALUGUMALAI ** (T)

암벽조각 ROCK FIGURES * 8-9세기

칼루구말라이의 암벽조각

바위산의 정상부에 힌두교의 미완의 석조사원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자이나의 티르탄카라상의 부조가 엄청나게 새겨져 있다. 다른 종교가 서로 파괴하지 않고 사이 좋게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 호감을 갖게 한다. 티루넬베리의 북쪽 약60km에 있는 남인도다운 화창한 전원풍경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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