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JAINA TEMPLE CITIES ON THE MOUNTAINS
자이나교의 산악 사원도시

가미야 다케오


사트룬자야의 산악 사원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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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트룬자야산의 사원도시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에 처음으로 인도를 여행한 3개월 동안 매일 매일이 새로운 발견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풍속이나 습관은 물론 그 때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일본의 건축과도, 구미의 그것과도 전연 다른 건축 풍경에 깜짝깜짝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한층 강렬한 경이로움을 느꼈던 것이 서인도에 있는 사트룬자야산의 「사원도시」이다.

 구자라트주의 파리타나라는 마을에서 동이 트기 전에 당시에는 마차(Tonga)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산 기슭으로 가니 이미 승려나 순례자 그리고 청소하는 사람들이 산을 올라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선인장 이외에는 거의 나무가 없는 황량한 산을 2시간 가까이 걸어 산 정상에 겨우 도착하면, 그 저쪽 편에 넓게 펼쳐지는 풍경에 앗! 하고 숨이 막힐 지경이다. 920개에 달하는 자이나교 석조사원의 당탑(堂塔)이 산 정상에서 빽빽하게 들어 찬 모습은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환상적인 광경이었다.


사트룬자야의 산악 사원도시의 평면도


 이 성산에는 24명의 <티르탄카라>(조사)에게 바쳐진 사원군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승려도 순례자도 해돋이와 함께 산에 올라가 일몰 전에는 하산한다. 산길이 험해지는 우기 4개월간은 산 전체가 폐쇄되어 마치 유령도시가 되는 것이다.

 사원도시는 남북의 2개의 봉우리와 그 사이의 계곡으로 이루어지고, 사원군은 <투크>라고 불리는 클러스터(cluster)마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요새화 되어 있다. 북쪽 봉우리는 카라타라바시·투크를 비롯한 6개의 투크로 이루어지고, 계곡부는 모티샤와 바라바이의 2개의 투크로 이루어지지만, 남쪽 봉우리는 전체가 하나의 투크를 형성하며 비말라바시·투크라고 불린다.

비말라바시·투크의 메인·스트리트

 이 남봉의 투크 문을 들어가면 양측에 다수의 대소 사원군이 나란히 서있는 메인·스트리트가 계속되고, 변화가 풍부한 그 시퀀스는 지중해의 촌락을 생각하게 한다. 이 메인·스트리트의 제일 안에 있는 아디슈와라 사원이, 지금으로서는 다른 사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화되어 순례자로 활기가 넘치고 성가를 부르는 경내로 되어있다. 반대로 북쪽 봉우리의 사원군은 잊혀진 역사처럼 쓸쓸히 서 있다.

 전체 사원의 스타일은 거의가 북방양식의 시카라 형식인데, 대소의 무수한 시카라가 빼곡히 차 있는 모습은 가히 압권이다. 카주라호의 사원 등과 다른 것은 만다파(홀)의 지붕으로서, 엎어 놓은 종 같은 작은 것이45도 경사진 모임지붕을 덮고 있는데 이것을 <삼바라나(Samvarana) 지붕>이라고 부른다.

 얼마나 오래 전부터 이 산에 사원군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인가는 알 수 없지만, 아디슈와라 사원은 960년에 창건된 것으로서 현재의 것은 1530년에 개축된 것이라고 한다. 자이나 교도는 사원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늘 수선하고 재건하면서 새로운 집을 짓기 때문에 시대를 특정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이들 사원의 반 정도는 근세 이후의 것으로서 중세에는 훨씬 수가 적었을 것이다고 생각된다.

아디슈와라 사원, 사트룬자야산

 

기르나르산의 사원도시

 자이나교는 이러한 「산악 사원도시」를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인도의 각지에 만들었다. 다수의 티르탄카라가 열반(涅槃)에 들었다고 하는 파라스나트(산메타·시카라)산은 동인도에 있지만, 소나기리무크타기리 등 서인도에 더 많다.

 사트룬자야와 더불어 건축적으로 중요한 것은 쥬나가드 동쪽 3킬로미터의 땅에 있는 기르나르산이다. 여기의 순례 등산은 사트룬자야산보다도 훨씬 더 심하여 바위산의 낭떠러지 절벽에 쌓아진 돌계단을 3,500단을 올라야 하고, 정상까지는 다시 1,000단을 더 오르지 않으면 아니 된다. 2∼3시간을 들여 간신히 정상에 오르면, 발이 휘청거려 죽을 것만 같았던 기억이 있다.

기르나르의 산악 사원도시

 그렇게 하여 겨우 도착한 사원도시를 바라보는 것은 또 하나의 커다란 경이로움이다. 비록 사원의 수는 사트룬자야보다도 훨씬 적지만, 650미터의 낭떠러지의 위에 홀연히 서 있는 사원군의 모습은 공상과학 영화의 우주기지와 같기도 하여 가우디의 구엘공원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여기에서는 대부분의 만다파가 삼바라나 지붕이 아니라 돔지붕이고, 또한 그것들은 백색을 기조로 하고 색이 선명한 타일·모자이크로 덮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지방은 강우량이 적은 반사막 지대로서 좋은 석재도 얻을 수 없다. 사트룬자야의 사원군도 거의가 기포가 많은 거친 사암으로 세워져 있어 비바람을 맞으면 거무스레 하게 변하여 버린다. 그리고 풍화가 심하기 때문에 많은 사원이 돌 위에 덧칠을 하여 채색되어 있다.

  
트윈·돔 사원과 전체면이 모자이크인 소사당

 그에 반하여 기르나르에서는 가장 더러워지기 쉬운 돔지붕을 언제까지나 선명한 모자이크로 마무리한다고 하는 새로운 수법을 개발한 것이다. 그 중에는 돔 뿐만 아니라 벽면도 탑도 전부가 모자이크로 덮여있는 실험적인 사원도 있다. 이것은 풍토에 맞는 건축술이다고 생각되지만, 실은 이러한 마감이 시작되어진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일본의 이토 다다히로(伊東忠太)가 지금부터 90년 전에 여기를 방문하여 찍은 사진을 보면, 돔에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지는 않았다. 아마 그것은 지난 세기 초에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아마다바드의 건축가 B·V·도시(Balkrishna Vithaldas Doshi)가 이 모자이크에 의한 볼트 지붕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기르나르산에서 가장 낡은 것은 1128년 건립된 건물인 네미나타 사원이지만, 그 동쪽에 있는 파르슈바나타 사원(*1)은 특이한 배치를 하고 있다. 기본 모양은 통례의 <성실 + 만다파>이지만, 만다파의 좌우에 2개의 원형집이 연결되어 있다. 각각의 돔천장의 밑으로는 3층의 계단이 쌓여지고, 정상부에 <차투르무카>(사면당)이 올려져 있다. 이것은 메르산과 파라스나트산을 모방한 것으로서 신자는 이 계단을 순차적으로 돌면서 올라 정상의 티르탄카라상에 참배를 하면 성산을 순례를 한 것과 동일한 공덕을 쌓게 된다고 한다. 일본의 후지총(富士塚; 신사의 경내에 흙으로 만든 작은 언덕으로서, 여기에 오르면 영산(靈山)인 후지산에 오른 것과 같다고 한다. 후지 신앙의 하나.)을 연상시켜 흥미를 끈다.

  
파르슈바나타 사원 내부의 “메르산”


자이나교의 이상과 산악 사원도시

 그런데 자이나 교도는 왜 이러한 「산악 사원도시」를 만드는 데에 그렇게 열성적이었던 것일까? 그 제1의 원인으로는 산악신앙을 들 수 있다. 인도에서는 예로부터 산악신앙이 성행하였고, 사원의 구성을 신들의 거처로서의 성산과 유사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우주의 중심을 이룬다고 하는 메르산(수미산)이나 시바신의 거처로서의 카일라사산이 그 대표이지만, 자이나교로서는 그러한 전설상의 산 이외에 현실의 성산을 순례하는 것을 공덕으로 생각하여 그러한 성지(티르타(Tirtha)) (*2)에 옛부터 사원을 건립한 것이다.

 또 하나의 원인은, 이교도에 의한 사원파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11세기 가즈나 왕조의 마흐무드에 의한 침공 이래 많은 자이나 사원이나 힌두사원, 불교사원이 무슬림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이것을 종교적 박해라고 해석한다면 조금은 사실을 바로 보는 것이 아닐 것 같다. 이슬람은 대체로 이교도에게 관용적이었다. 그러나 군사적으로 정복한 토지를 약탈하는 것은 전쟁에서 늘 있었고, 또한 현실적인 필요성에 의하여 무슬림의 예배장소를 확보해야만 하였다. 그래서 정복지의 석조사원을 해체하여 그 부재를 모스크에 전용한 것이다.

 본질적으로 열주(列柱) 홀인 모스크를 짖기 위하여는 기둥이 많은 자이나 사원이 더 없는 좋은 재료였다. 아쥬메르나 델리 그리고 아마다바드에는 그 전형적인 예가 보인다. 이슬람으로서는 우상숭배가 엄격히 금지되기 때문에 그러한 모스크에서는 기둥이나 보의 조각에서 우상 부분만을 깎아내었다. 그러나 기본적인 구조나 인도식 돔천장 등은 그 대로이기 때문에 현저하게 자이나·힌두적인 이슬람건축으로 되었다.

사트룬자야산의 카라타라바시·투크

 이렇게 하여 북인도의 도시에 세워져 있었던 많은 자이나 사원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오래된 사원은 도시 등에는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새로운 사원의 건립장소로서 파괴될 우려가 적은 깊은 산속의 땅이 선택된 것이다. 그래도 델리의 발지왕조를 비롯한 침공은 사트룬자야에도 미쳐 사원은 종종 파괴되었다.

 16세기에 무갈왕조의 악발 황제에 의한 여러가지 종교 융화정책에 의해서 비로서 평화의 시대가 시작되었지만, 사트룬자야의 각 투크가 요새와 같이 둘러싸여 있는 것은 그러한 방어를 위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사원파괴는 힌두사원에 대하여도 이루어진 일이므로 그것 만으로서는 자이나교의 산악 사원도시를 완전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현재에 남아 있는 사트룬자야의 사원군의 과반은 오히려 파괴의 염려가 없어진 18, 19세기에 세워진 것이다.

소나기리의 사원도시

 자이나에는 속세로부터 떨어진 깊은 산속에 마음이 끌리는 독특한 정신이 있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현세이탈(現世離脫)의 사상이다. 예로부터 인도에는 현세를 고해(苦海)라고 보는 경향이 있고, 더구나 사람의 생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몇 번이라도 다시 태어나 또 여전히 괴로운 생을 다시 살아 가야만 한다는 <삼사라(samsara)>(윤회관)이 있었다. 또한 다음 번에도 반드시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죽을 때까지 쌓은 <업(karma)>(業)의 정도에 의해서 짐승이 되거나 벌레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 주위에 있는 개미나 거미도 어쩌면 죽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다시 태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어떻게 무심히 밟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러한 생명관과 윤리관을 가장 강하게 갖고 있는 자이나교는 가령 하찮은 벌레나 잡초라도 그 목숨을 빼앗지 않고(아힘사, 비살생) 모든 생명을 존중하여 <업(karma)>을 경감하자고 생각한 것이다.

 레이첼·칼슨(Rachel L. Carson)은 『침묵의 봄(Silent Spring)』에서 자연계를 파괴하여 조수나 식물을 살륙하는 농약이나 살충제 등의 「공해」를 고발하였다. 환경 문제의 바이블이라고도 불리어지는 그 책을 쓸 때에 그녀의 심성은 대단히 자이나교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를 궁극적으로 추구하면 동물이나 식물에 있어서는 농약 뿐만 아니라 인간존재 그 자체가 「공해」인 것이다.

 자이나교의 근본정신은 인간이 자연계에서 더 이상 공해가 되는 것을 그만두고자 하는 것이었다. 육식을 하지 않는 것은 동물을 죽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식물도 또한 가능한 한 죽이지 않고, 특히 뿌리와 같이 생명의 근원이 되는 부분은 먹지 않는다. 어두운 곳에서 식사를 하면 잘못하여 작은 벌레를 함께 먹어 죽이기 때문에 낮에만 식사를 하는 것으로 하였다. 포식의 악습을 끊기 위해서는 기간을 정하고 단식을 한다. 그리고 궁극적인 이상은, 세속으로부터 떨어진 깊은 산속의 청정한 곳에서 단식에 의해서 아사(餓死)하는 것이다.(*3)

명상에 몰두하는 공의파의 자이나 스님

 정신의학자인 기시다(岸田秀)에 의하면, 인간이란 본능이 파괴된 동물이라고 한다. 자연계의 생물이 본능을 따라 살아가는 한, 거기에는 일정한 평화공존의 질서가 유지되지만, 인간존재는 무엇인가 다른 동물이나 식물과는 결정적으로 달라 다른 생물에게 공해가 되지 않을 수가 없는 일탈적인 성향이 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원죄이고, 그 때문에 인류는 지구상의 동물이나 식물들에게 피해를 끼쳐 온 것이다.

 이제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자각적으로 「철수」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은 아닐까? 이미 태어나 생존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생을 제대로 마감해야 하겠지만, 금후 일절 아이를 낳는 것을 중단하면 현존하는 인간의 최후의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 지구에는 참된 평화가 찾아와 지상의 낙원이 실현될 것이다. 이미 2,500년도 전에 자이나교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
  1. 퍼거슨은 이것을 마리나타 사원이라고 하고 있다. 기부한 사람은 소란키 왕조의 대신이라고도 또는 상인이라고도 전해지는 테자파라와 바스투파라 형제로서 그들은 아부산의 루나·바사히와 그 이외에 많은 사원을 건립하였다.

  2. <티르타>의 원래의 뜻은 「강의 얕은 여울, 나루터」로서 무상의 세계에서 영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가르키며 성지나 순례지를 의미하게 되었다. 그 <티르타>로 사람들을 인도하여 주는 사람이 <티르탄카라>(혼의 구제자)이다.

  3. 아사에 의한 해탈을 <사레카나>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누구에게나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고행자를 별도로 한다면 이미 노년에 도달한 사람, 자연의 재해나 기근, 병 등으로 신앙 생활이 곤란하게 된 사람에게만 허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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